김상호 헌정안전(주) 대표이사

중학교 2학년인 여아와 7살 남아 두아이와 함께 하는 필자의 집에서 며칠전 작은 사고가 하나 있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작은방 바닥에 과일들이 떨어져 있어 물티슈 몇장으로 바닥을 정리하고 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른 수건을 가지러 가던 중 둘째 아이가 작은방으로 들어가다 물기에 미끄러지며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였다.

왼쪽 팔꿈치쪽이 방바닥에 먼저 접촉되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자칫 안면부 상해나 팔 골절 등 심각한 사고로 연결될 뻔했다.

안전을 업으로 하면서 평상시 절차적인 디자인을 포함한 안전한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게 무색해지던 순간이었다.

사실 방바닥을 물티슈로 닦기 전에 ‘마른 수건을 먼저 준비해 놓고 닦을까? 먼저 닦고 마른 수건을 가져와서 마무리할까?’ 하는 작은 고민이 있었지만 방에 아무도 없는데 물티슈로 닦고 나서 마른 수건을 가져와 마무리하자는 마음의 결정이 있었고 마른 수건을 가지러 간 사이에 둘째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사고가 발생됐다.

잘못된 절차에 의해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Risk Time)이 만들어 졌고 결국 사고로 연결된 것이다.

짧게나마 시간의 흐름대로 먼저 작업순서를 그려보고 마른 수건을 먼저 준비했더라면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보다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경험이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환경은 편의성 위주로 디자인 돼 있으며 최종 결정된 디자인 속에는 크고 작은 유해·위험요인들이 내재돼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원에서 안전관리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해외 모기업의 안전관리 프로그램을 연구하면서 안전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안전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됐다.

몇가지 사례를 언급해 보면 화구가 4개로 디자인된 가스레인지가 국내 제품들은 제일 큰 화구가 앞쪽에 배치돼 있는 반면 많은 유럽 제품들은 제일 큰 화구가 뒤쪽에 배치돼 있었고 거실에 설치된 대형 슬라이딩 창호가 국내 제품들은 프레임 사이에 손가락이 끼일 수 있는 디자인인 반면 유럽 제품들은 스토퍼 위치의 차이로 손가락이 끼이지 않는 안전한 디자인이 고려돼 있었다.

사례들을 보면서 안전관찰이 습관이 되다보니 생활환경 속의 잘못된 디자인들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대형마트 화장실의 불안전 행동을 유발하는 손세정제 위치, 스포츠센터 휠체어 램프구간에 잘못된 방향으로 설치된 프로젝트 창, 아파트 지하주차장 1층 램프구간 시작점에 형성되는 차량 동선과 주민 동선이 교차되는 환경, 주출입구 계단실 창호 직하부 낙하물 위험구간에 설계된 휠체어 램프,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지하철 출구 번호와 고속철도 승강장 번호 등 다양한 생활환경들을 관찰하게 되면서 잘못된 디자인들이 인지됐고 디자인과 안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자인과 안전의 상관관계, 안전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안전에 대한 근본적 차이는 유형·무형의 디자인 속에 내재된 위험요인들이 인지되고 있느냐 인지되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위험요인의 인지 유무에 의해 결정된 디자인에 따라 위험성의 크기가 좌우되는 것이다.

위험성평가는 공학이나 기술이라기보다는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참여해 사업장 환경 속에 내재된 위험요인들을 인지하고 관리하는 체계적인 일상활동이다.

안전문화가 성숙한 선진국들을 보면 산업발전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환경 속에 내재된 유해·위험요인을 인지하는 시각이 습관화돼 왔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안전관찰의 내재화가 문화화돼 있어 적절한 물리적 환경(유형의 디자인)과 절차적 환경(무형의 디자인)이 관리되고 있는 반면 1970~80년대 고도의 압축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산업발전의 속도와 안전문화가 형성되는 시간적 차이가 있어 경제성장률은 OECD 회원국 중 10위권이나 안전관리 수준은 최하위권에 위치하는 기형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위험성평가를 조직의 안전문화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장 환경 속에 내재된 유해·위험요인들을 인지할 수 있는 안전관찰 내재화의 단계가 필요하고 안전관찰 내재화를 토대로 한 유해·위험요인관리의 시스템화 단계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지표관리화 단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위험성평가는 최고 경영자의 관심과 의지를 필두로 모두 함께 참여해야 하는 시스템임에도 몇몇 구성원들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위험성평가를 조직의 안전문화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기능적인 참여를 강제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지도록 동기 부여와 안전관찰 내재화를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지속적인 교육훈련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김상호 sangho.kim@hj-safe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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